[시 필사]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임솔아
석류
창문은 창밖에 서 있는 나를 보게 한다. 내 허벅지 위로 도로가 나 있고 내 허리 속으로 막차가 도착한다.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내 가슴 속 빌딩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슴에 손을 넣어 창문을 연다. 한 여자가 화분을 분갈이하고 있다. 그 아래 창문을 열면 하얗다. 갓난아이가 눈을 움켜쥔 채 설원 위를 기어 간다. 그 아래 창문을 열면 내 눈썹에서 가로등이 켜진다. 내 이마에서 비행기가 지나간다. 몸속에 있던 도시가 몸 밖으로 배어 나온다. 마지막 창문을 열면 창 안에 서서 창문을 세어보는 나를 볼 수 있다. 알알이 유리가 빛나고 있다. 불을 끄면 창밖에 서 있는 나와 창 안에 서 있는 내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모래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아름다움
바다를
액자에 건다.
바다에 가라앉는 나를 본 적이 있다.
팔다리가 부식되어
산호가 되어갔다.
허옇게 변한 사지가
산호들 사이에 갇혀 있었다.
노랗거나 파란 물고기들이 주변을 배회했다.
저기 열대어가 있어, 스킨다이버들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젖은 빵을 찢어 던졌다.
아름답다는 말을 산호 숲에 남겨두고
스킨다이버들은 뭍으로 돌아갔다.
나를 그곳에 둔 채 나도
꿈에서 빠져나왔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나를 여기에 둔 채 나는
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가서
정육점과 세탁소 사이에
임대문의 종이를 쳐다보고 서 있다.
텅 빈 상가 속에서 마리아가 혼자
퀼트 천을 깁고 있다.
이 액자를
다시 바다에 건다.
예보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 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기본
흰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내일의 약속을 위해서
옷가게에 들어갔다. 흰 티셔츠가 흰 티셔츠끼리
모여 있었다. 가슴에는 주머니가 없거나 있었다.
옆 가게에도 들어갔다. 흰 티셔츠가 다른 티셔츠와 무더기로 쌓여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옷은 조금 더 저렴했다.
얼굴 없는
마네킹은 어떤 옷이든 잘 어울렸다. 내 얼굴에
잘 어울리는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기본 티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죠, 점원이
말했다. 흰 티셔츠를 찾아다니다 집에 있는
흰 티셔츠가 기억났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옷장 서랍을 열어보았다.
흰 것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흰 티셔츠는 저마다 다른 얼룩을 갖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얼룩에다 치약을 묻혀
비볐다. 지워지고 있는 얼룩을 이목구비가 허옇게 바래가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오래 지켜보았다.
지워지는 얼룩은
지워졌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가장 자주 입어 가장 쉽게 얼룩이 졌다.
탈수된 티셔츠를 세탁기에서 꺼내어
탁탁 털었다. 창가에 걸어두었다. 티셔츠가
펄럭였다. 말라가면서 옷은 더 환해졌다. 내 방에는
얼굴 없는 빨래들의 환한 냄새가 퍼져갔다.
내일은 약속이 있다.
여분
우두둑, 뜯어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가다가 사라졌고
나는 죽었구나
그랬는데
얼마나 더
여분의 목숨이 남아 있을까.
차가운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무릎이 녹아내린다.
무릎이 사라져간다.
사라지고 있는데
살 것 같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내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빨갛고 예쁠까.
무릎에 눈꽃이 피고 있다.
코트를 열어 무릎을 집어넣고 감싼다.
코트 안쪽에 달려 있는 여분의 단추에
나와 닮은 얼굴이 있다.
까맣고 동그랗구나
했는데
나를
내 그림자로 인해 나는 나를 구경할 수 있다. 그물처럼 서로의 그림자가 겹쳐질 때 그곳은 우리의 집이 된다. 아무나 밟고 지나갔으나 아무리 밟아도 무사해지는 집이 느리게 방바닥에서 움직인다.
구름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 창밖의 먼 곳에서 바람이 분다. 구름 그림자는 발끝부터 나를 지나간다. 날벌레 한 마리가 구름 그림자를 드나들고 먼 것들이 틈틈이 나를 뒤덮는다.
나는 오랫동안 있다.
그림자는 목숨보다 목숨 같다. 나는 아무것에나 그림자를 나눠 준다.
아무와 나는 겹쳐 살고 아무도 나를 만진 적은 없다.
티브이
그렇게 슬퍼? 광복 7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 숭례문이 불타고 있었다.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그는 콧물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운다.
나는 키즈 과학체험을 보며 운다. 소의 배에 구멍을 뚫고 아이들에게
손을 넣게 한다. 소야.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소야.
아이들이 배에서 꺼낸 곤죽이 된 음식물을 허연 침을 뚝뚝 흘리며 핥는 소야.
나는 콧물을 풀고 눈믈을 닦으며 티브이를 본다.
지금은 긴급속보에서 카트만두가 무너지고 있다.
사망자가 8백 명이라더니 이 시를 쓰는 동안 4천명으로 늘었다.
왜 울지 않아?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는 눈물은 안 난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본 비극을 모아 나는 지금 시를 방영한다.
뛰어난 인류를 상상한 독재자가 학살을 자행한 다큐를 보았고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중심가로 질질 끌려가며 죽어갔고
수백의 사람들이 구경만 했다는 뉴스를 감자칩을 먹으며 메모했다.
잔재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올라온다. 이름이 뭐예요? 대답하세요, 구조대 올 거예요,
말을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나는 티브이에게 말을 건다.
깜박깜박 졸음에 빠지는 티브이를 깨운다.
나는 티브이 속으로 들어간다. 차벽 너머의 그를 만난다.
우리는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은 마주 보는 것을 대치 중이라 한다.
이 차벽 너머에서 그가 등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등을 돌려야만 같은 티브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모형
기린이 보고 싶어서
기린을 보러 간다.
기린은 보지 못하고
기린을 만든다.
기린을 지구 옆에 둔다. 지구 옆에
얼굴이 백팔십도 돌아간 채 웃고 있는
영웅이 있다.
지구가 보고 싶어서
지구를 돌린다.
바다가 이렇게나 더 많은데
해구가 아니고 지구가 되다니.
기린에 기린이 없어서
지구에 지구가 없어서
사람에 사람이 없어서
좋다.
보려던 것을 못 보면 가짜를 만들게 된다.
나는 사람 같은 모형이 된다.
이 세계도 어느 세계의 모형에 불과하다.
보고 싶은 세계를 보지 못해
이 세계를 만들던 손들이 지금
이 세계를 부수고 있다.
세계가 세계로부터 헛걸음을 한다.
나는 나를 모형들과 함께 세워둔다.
어째서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
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
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보았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
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
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
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 원 월세 입금,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
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
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멈춰버린 시계를 또 차고 나왔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하얀
불을 끄니
불을 켜고 있을 때의 내 생각을 누군가
훤히 읽기 시작한다.
낮에 만난 이야기들은 햇빛에 닿아
타버렸다.
베란다의 토끼는
귀가 커다랬고 털이 하얬고 나날이
뚱뚱해졌다.
내가 없는 한낮에
벽지를 뜯고 책상을 갉고 내 운동화를 핥더니
어느 날 죽어버렸다.
입술을 뜯어 먹다가 내 입술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빨아 먹었는데 왜 그랬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살인자는
대답한다. 나는 다른 죽음을 향해
채널을 바꾼다.
불 꺼진 방에
앉아 있다. 아픈 사람처럼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토끼를 씻어주었던 날 토끼는 죽었다. 나는 두 손으로
누군가의 까만 그림자를 씻는다.
기억나지 않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한다고
살인자가 대답한다.
불을 켜니
불을 끄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했던 생각을
이어서 하게 되고
우리 건물이
흰 안개에 싸여 있다는 걸 나가서야
알게 되었다.
멍
더러워졌다.
물병에 낀 물때를 물로 씻었다.
투명한 공기는 어떤 식으로 바나나를 만지는가. 멍들게 하는가. 멍이 들면 바나나는 맛있어지겠지.
창문을 씻어주던 어제의 빗물은 뚜렷한 얼룩을 오늘의 창문에 남긴다.
언젠가부터 어린 내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닌다. 꺼지라고 병신아, 아이는 물컹하게 운다.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멍든 얼굴을 구긴다. 구겨진 아이가 내 앞에 있고는 한다.
사랑받고 싶은 날에는 사람들에게 그 어린 나를 내세운다. 사람들은 나를 안아준다.
구겨진 신문지로 간신히 창문의 얼룩을 지웠다. 창밖을 내다보다
멍든 바나나를 먹었다.
동시에
자판기 불빛을 마시러 갔다. 만지작대던 동전을 넣으면 금세 환해지는 게 좋았다. 종이컵과 악수를 하는 게 좋았다. 갓 태어난 메추라기처럼 따뜻한 종이컵. 테두리에 이빨 자국을 새기는 게 좋았다. 의자 위에 세워두었다. 내가 버린 컵은 편지가 되었다.
비바람 치는 밤에는 빗방울들이 악착같이 나를 부르는 게 좋다. 발음이 어려운 내 이름을 두 번 부르게 하는 게 좋다. 내 이름을 모른 체하느라 벗어놓은 옷을 내가 뒤집어쓰는 게 좋다. 폭우에 몸을 녹이느라 폭우를 맞는 게 좋다. 성당의 첨탑 아래에서는 악마와 천사가 공평하게 부식되는 게 좋다.
종이컵 편지에 빗방울이 모여들 것이다. 빗방울이 모여 구름을 새길 것이다. 연녹색 손바닥이 버즘나무 가득 퍼드덕거릴 것이다. 잘 가라는 손짓이면서 동시에 잘 있으라는 손짓일 것이다.
뒷면
발소리가 조여온다. 발소리가 팽팽하게 조여온다.
가로수의 조용함이 뾰족해진다. 가로수의 음영이 날카로워진다.
모퉁이에서 뒤돌아선다.
누구야. 왜 따라와. 밤길이 걱정이 되었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모르는 내 비밀이 발끝에 엉겨 붙는다. 내가 모르는 내 비밀이 덥석 자라난다. 내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잠시 공원에 앉아 미끄럼틀을 바라본다. 미끄럼틀의 밝은 면은 비어 있다. 미끄럼틀의 어두운 면은 숨어 있다.
아무도 없는데 센서등이 켜지고 꺼진다. 고양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래서 그랬다
살구꽃은 무섭다. 하루아침에 새까매진다. 가로등 아래서 살점철머 시뻘겠는데.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보다 무섭다. 유리컵 속에 가둔 말벌이 죽지는 않고 죽어만 간다.
잠그지 않은 가스밸브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내가 무섭다. 아무도 없어서 무섭고 누군가 있을까 봐 더 무섭다.
엄마한테 할 말 없니
엄마의 그 말이 내 말문을 닫는다.
할 말이 없어서 무섭고
할 말이 생길까 봐 더 무섭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질 때와 같이 무서워하던 것들이 시원하게 풀려나간다. 눈물도 안 나던 순간에 갑자기 끝나는 순간에 무섭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 한 번도 믿어보질 못해서 쉽게 믿어버릴까 봐서
술 취한 친구의 눈빛과 술 안 취한 친구의 눈빛과
그래서 그랬다는 말과
아빠의 검지가 무섭다. 한 마디만 남아서 손톱이 없어서 손톱이 없는데도 가려운 곳을 긁어서
예의
명절처럼 한 사람씩 모여들었다.
식구들은 자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실 물을 가져다주었고
덮을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개를 위할수록 개는 혼자가 되었다.
개는 헐떡였다.
헐떡였지만 웃는 것 같았다.
주섬주섬 카펫 바깥으로 기어가 오줌을 쌌고
그 위에 쓰러졌다.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식구들은 번갈아 머리를 받쳐주었다.
어린 개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다가
잘 가, 깜지야. 가라고 하지 마, 얘가 들어.
먼저 자, 출근해야하잖아. 같이 기다릴 거야. 같이 뭐를 기다리는데?
눈을 감겨줄 거야. 손 치워, 숨을 못 쉬잖아. 죽었잖아.
사랑하는 목숨이 숨을 거두는 동안
우리는 충분히 우스꽝스러웠고
개의 시체를 토마토 상자에 넣고
차가운 데에 두자며 현관으로 옮겼다.
식구들은 옹기종기 누워 잠을 청했다.